뮤지컬 오디션

이미 예전에 둘이서 공연을 관람하곤 박병태 역의 배우 이승현에게 열광한 보영과 연정의 강력 추천으로, 재관람자인 두 여인에다 두 여인이 추가로 함께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갔다. 작으면서도 역시 지은 지 얼마 안된 공연장답게 깔끔한 상명아트홀과 아주 제대로 어울리는, 규모는 작지만 기복없이 잔잔하면서도 짠한 스토리와 또 그에 상반되게 굵직굵직한 음악으로 꾹꾹 눌러담겨진 밀도 높은 공연이었다.
보통 이런 소극장 공연이라는 게, 진짜 생각없이 웃기던가 아니면 골똘히 생각하면서 봐야 하는 공연으로 양분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공연은 작정하고 웃기는 건 거의 없지만 음악에 워낙 치중하다 보니 머리를 써야 하는 심각한 내용은 없어서 편안하게 그냥 보고 즐길 수가 있었다. 찬희역의 배우 정찬희의 일렉 실력에 감탄하고, 또 비중은 그리 높지 않지만 목소리가 정말 아름다웠던 다복역의 배우 위다복의 노래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공연의 중심스토리가 끝나고 막바지 보너스 공연이 시작됐다.
볼 때는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다들 정말 음악실력이 뛰어나서 거의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음악공연을 보는 수준이라 더더욱), 공연이 끝나고 잠깐 티타임을 가진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갑자기 뮤지컬의 밑바닥에 조용히 꼼꼼하게 깔려있던 '사랑이야기'의 침전물들이 뭉글뭉글 다시 머릿속으로 피어올랐다. 최근에 사랑이라는 감정의 근처에도 가지 않은 나에게 '역시 사랑과 풋풋한 연애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는, 머리위로 조용히 번쩍 들어올린 커다란 플래카드처럼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는 그 메시지는 그냥 뭔가 뮤지컬의 내용과 별도로 나를 이유없이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공연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유골과 뼛가루 자체도 나에게는 아직은 너무 자극적이었다.
재밌고 알차고 질좋은 공연인데, 내가 묻어두고 있던 쓸데없는 생각들을 슥슥 휘저어 놓는 바람에 공연 본 다음날인 오늘 일요일은 새벽예배에 잽싸게 다녀온 후 하루종일 혼자서 그냥 은둔하며 쉬었다. 좋은 공연들과 영화들이 사랑의 아름다움을 목놓아 외쳐주는데도, 이렇게 혼자 있는 게 점점 좋아져서 큰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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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형 | 2008/09/21 23:19 | 리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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